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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 대동계

구림마을 사진
군서면 구림 대동계는 1565년(명종 20)경에 박규정·임호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구림 대동계는 명칭은 계(契)이나 설립 당시의 우리나라에서 향약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대동계의 창립을 선언하는 구림동 중수계서(鳩林洞中契序)에서 보여주는 설립배경, 그리고 계약(約)과 동헌(洞憲) 또는 강령의 내용을 보면 향약(鄕約)이다. 즉 우리 사회에 기존하였던 상부상조를 주요 목적으로 한 계(契)에 중국에서 전래한 향약의 이념을 반영한 향약적 성격의 계 또는 계 명칭의 향약이다.

화민성속(化民成俗)을 위한 향약적 성격의 구림 대동계는 유일하게 설립 초기의 계문서(契文書,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가 보존되고 지금까지 계 운영이 지속되고 있다. 당시 임호의 구림동 중수계서(鳩林洞中契序)에 의하면, 친족간의 친소관계가 약해지고 그 통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동계가 설립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 150여 년 전에 이미 동계의 선행 형태가 있었는데, 난포 박씨 박빈(朴彬)이 구림으로 입향한 후 그 내·외손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것으로 그 뒤 박권·박목조(朴木條)·임구령·박휘(朴揮) 등에 의해 유지되었다.

구림 대동계는 촌락민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조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이사(里社)와 같은 조직이 발전된 형태며, 현재 유지되고 있는 형태는 사림파의 향약 보급운동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이 구림 대동계가 창설된 시기인 1565년이 영암지방 최초의 향약성립 직후였다는 사실에서 확인이 된다. 즉 영암지방 최초 향약은 임구령(1501~1562)·박규정·신희남(1517~1591)·이후백(1520~1578)·백광훈(1537~1582) 등 당시 영암지방의 대표적인 사림세력에 의해 마련되었고 그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체로 1560년대이다. 구림 대동계는 바로 이들 영암 향약 창설자들 중 구림 출신 인물이었던 임구령·박규정 등의 발의로 창설되었으며, 임구령이 죽자 그의 아들 임호(林浩)가 대신 부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림 대동계는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임진왜란으로 일시 침체되어 유명무실해졌으나 1609년(광해군 1)~1613년 어간에 재중수가 이루어져 조선 후기의 동계로서 특징을 마련하였다. 당시 완의(完議)를 보면 동계의 목적은 종래 구림의 미풍양속이 난후 점차 패퇴하여지고 기강이 문란하여짐에 상하민들이 합심하여 구래의 전통을 복구하려는 것으로써 이 동계의 성립이 재지사족들의 결속과 향촌사회의 안정, 향촌민 통제의 필요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동계는 상·하 합계의 형태로 임란 이후 동계의 일반적인 추세와도 같다.
구림대동계문서
그러나 인조 19년(1641)에서 1646년에 걸쳐 진행되는 재중수 작업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볼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구림 대동계의 전형은 바로 1646년에 중수된 것인데 이 중수작업 이후부터는 기본적인 동계 골격과 주도층이 크게 변화되지 않고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동계의 세부 조목들이 시세의 변화에 따라 일부 수정·추보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사족층의 향촌지배의지는 계속 견지되고 준수되었기 때문에 오랜 유서를 간직하며 오늘날까지도 보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동계의 성격은 17세기 사족의 입장과 향촌지배질서를 반영하는 자료로서 매우 주목되는 것인데, 우선 이는 1609~1613년의 중수와 비교하여 약조면에서 새롭게 교량이나 도로의 보수, 그리고 산림보호 등의 동리와 관련된 사업에 대한 조목이 추가되고 동사(洞事)에 태만한 사람을 출계(黜契)가 아닌 출동(黜洞)으로 벌하는 조항이 마련되고 있었다. 이는 당시의 동계 조직이 촌락 공동체적 기능에 주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만한 것으로, 상·하 합계 형태의 17세기 않계가 지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촌락공동체적인 성격은 오히려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이르면서 사족적 지배가 달성되자 일시 퇴화의 국면을 보여주며, 하계원의 탈락도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난다.

회사정

회사정
회사정은 대동계의 창설과 때를 같이하여 지어진 회원들의 집회 장소인 정자이자 더불어 마을을 찾은 귀빈의 영접이나 경축행사에 이용된 장소이며, 3·1운동 때 먼저 독립만세의 기치를 올렸던 곳이기도 해서 마을의 작은 역사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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