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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리 석불입상 (학산면 학계리)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조선시대 선조 때 학산면 학계리에 정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정 부자는 수 년 동안 지성을 들인 결과, 늘그막에 아들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자식이 귀한 우리 집안에 늦게나마 아들을 얻게 되었으니..."
정 부자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정부자님은 기쁘시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지"
"이름을 뭘로 지으셨는지요?"
"하늘이 내린 자식이니 天子라고 내 이미 지어 놓았지."
정 부자는 만나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나이도 잊은 채 아들 자랑을 하며 기뻐했습니다.

정 부자의 아들인 천자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자상하신 아버지, 정 부자의 정성 때문인지 천자는 늘 겸손하고 착한 행동을 일삼아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늘그막에 아들 하나 얻더니, 아들이 저리도 착하니까 정 부자는 기쁘기 그지 없겠어."
"암, 그렇고 말고."
"정 부자가 천성이 착하니까 늘그막에 복받은 거지 뭐."
마을 사람들은 정 부자를 은근히 부러워하며, 정 부자와 정 부자의 아들을 칭찬하곤 했습니다.
"여보, 우리 천자를 빨리 혼인시킵시다. 그래야 죽기 전에 손주라도 보지 않겠소."
정 부자는 천자가 열 살이 넘자 마자 규수감을 물색하여 천자를 일찍 혼인시켰습니다.
"이제 빨리 손주를 보야야 할 텐데..."
"영감도 성미 하나 급하시기는... 어련히 때가 되면 손주가 생길 텐데 그러시오."
정 부자는 자신이 뒤늦게 자식을 보게 된 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인지 손주가 빨리 생겨나길 몹시 기다렸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자는 여전히 천진스럽게 행동했습니다. "아무래도 천자가 음양의 이치를 모르는 것 같으니 당신이 며느리를 불러 음양의 이치를 깨닫도록 일러 주시구려. 내 천자가 음양의 이치를 깨닫도록 힘 쓸터이니까." 정 부자는 아내에게 넌지시 며느리 교육을 부탁하였습니다.
"영감, 아직 우리 천자가 어리니까 조금 지나면 깨닫지 않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천자 나이가 열 다섯 살이 되었는데도 저렇게 어린애 같으니 원."
정 부자는 아들을 혼인시킨 지 다섯 해가 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자 아들에게 음양의 이치를 깨닫도록 노력했습니다.
"천자야, 너 날 따라 오너라."
"네."
정 부자는 외양간으로 가더니, 하인을 불렀습니다.
"준비되었느냐?"
"네."
이미 하인들이 외양간에서 대기하고 있더니, 정 부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황소 한 마리와 암소 한 마리를 끌고 나왔습니다.
"저 뒤뜰로 끌고 가자."
정 부자는 아들을 데리고 뒤뜰로 갔습니다. 황소가 발광하며 암소를 올라타려고 몸부림을 하는 장면을 아들에게 보여주면서 정 부자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소들이 왜 저러는지를 아느냐?"
"싸우는 것이겠지요?"
정 부자는 자세히 아들에게 음양의 이치를 깨닫도록 설명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각종 서적을 통해 음양의 이치를 깨닫도록 힘썼습니다. 그 뒤부터 항상 천진스럽고 밝은 얼굴인 천자가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난 안 된단 말이야. 아버지 뵐 면목은 물론 아내의 얼굴 보기가 민망스러우니 어쩌면 좋지?"
항상 수심이 찬 얼굴로 천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탄해 했습니다. 천자의 나이 스물이 되었을 무렵 정 부자는 손주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불효자식. 용서하십시오. 아버님!"
천자는 마음 속으로 한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천자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고자임을 알고 난 뒤부터 늘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그런 중에 또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하고 눈을 감게 했으니, 더욱 가슴이 찢어질 듯했습니다.
"다 하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는 일. 대가 끊겨 조상을 뵐 면목이 없으니 원통하구나."
천자는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천자는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 집의 일처럼 남을 돕기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라켜 구민(救民)고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혈통을 남기지 못한 것을 항상 한탄 하며, 학계 뒷산에다 높이 15척의 미륵비를 조각해서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아침 저녁으로 미륵비에 제사를 지내며, 자식 하나 점지해 주시길 지성으로 빌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에게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제 논 두 마지기를 미륵비 제수비로 봉할 터이니, 매년 3월 15일이면 미륵비 제사를 지내 주시면 고맙겠소."
마을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그의 유언을 지키기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곳 학계리 사람들은 그의 유언대로 제사 유사를 정하여 제삿날 일주일 전부터 목욕을 깨끗이 하고, 부정을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3월 15일이면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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